* 김우옹(金宇옹) * (1540-1603) (옹= 땅이름 옹+頁)
자는 숙부(肅夫), 호는 동강(東岡) 또는 직봉포의(直峰布衣)라 했으며,본관은 義城이다. 삼척부사를 지낸 김희삼(金希參)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한강 정구와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 산맥인 남명 조식과
퇴계 이황의 문하에 출입해 정통 성리학의 맥을 이어받았다.
1552년(명종 7)에 진사가 됐고, 1567년(선조 즉위년) 별시문과에 급제해
지성과 행동을 겸비한 깨어있는 선비들이 주로 임용되던
정자․수찬․전적․부교리․이조 좌랑․부응교 등 청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580년 선위사(宣慰使)가 되어 일본 사신 현소(玄蘇)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여악(女樂)을 폐지토록 건의해 허락을 얻어냈다. 그 후 직제학․대사성․대사간을 지냈다.
외직으로 전라도 관찰사․안동 부사를 역임했으나 1589년 기축옥사에 연루되어
회령에 유배된 후 1592년 사면되어 승문원 제조와 병조참판이 됐다.
1593년 동지중추부사를 거쳐 동지의금부사로 선조를 호종해 서울로 환도했으며,
그 해 12월 한성부 좌윤에 올랐고, 대사성․이조 참판․예조 참판을 지낸 후
1599년 사직했다. 유교적 정치이념과 문장에 뛰어나 비어기무(備禦機務) 7조,
중흥요무(中興要務) 8조 등의 시무책을 자주 건의했고,
한강 정구와 함께 성주권의 양강(兩岡)으로서 정치적․학문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사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문정(文貞)’의 시호가 내렸다.
* 선비로서의 면모
동강은 34세 때인 1573년(선조 6) 홍문관 정자에 임명되면서
경연에 참석하기 시작해 57세 되던 해까지 20년 이상 수시로 경연에 참석해
선조에게 성군이 되기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요즘의 국립대학의 총장격인
성균관 대사성을 지내는 등 교육자로서 손색없는 활동을 했다.
수많은 인재를 추천하고 억울한 사람을 구명하기도 했으며, 부수찬으로 입시했을 때,
선조가 학행이 뛰어난 인재를 묻는 선조에게 동향 친구이자 학행이 걸출한
한강 정구를 천거해 출사하게 했다.
1589년 최영경(崔永慶)이 정여립의 모반사건에 무고를 입고, 정철의 국문을 받다가
억울하게 옥사한 것을 대사헌으로 있을 때 상소해 그 억울함을 신원(伸寃)하게 했다.
좌의정 윤두수(尹斗壽)와 우의정 유홍이 용렬․무능하고 사리사욕을 탐하며,
정철이 어진 사람을 죄로 얽어 죽인 것을 논박해 벼슬에서 쫓겨나게 했다.
1598년(선조 31년) 류성룡이 영의정으로 무고로 화를 입게 될 것을 알고
죽을 각오로 상소해 그 억울함을 풀어주었다.
이 처럼 동강은 남의 억울한 일에는 발 벗고 나서서 해명하는데 앞장섰지만
정작 자신의 일에는 지극히 담담하고 호방(豪放) 했다.
* 역사가로서의 저술
김우옹은 동인(東人)으로서 기축옥사(己丑獄事, 1589년)에 연루되어
회령(會寧)으로 유배됐는데 이때 ‘속자치통감강목(續資治通鑑綱目)’36권을
저술했다. 강목은 36권 20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송태조 원년(960)부터 명태조 원년(1368)까지 408년간의 중국 역사인
주자(朱子)의 ‘강목(綱目)’에 이어서 그 후기 약사를 편년체(編年體)로 쓴 것으로
대의명분과 정통론을 강조하는 사림의 역사의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 남명 조식으로부터 성성자(惺惺子)를 물려받은 김우옹
김우옹은 퇴계와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인 남명의 외손으로서 그의 가르침을 받았고
그로부터 ‘성성자’를 물려받았다. 조식은 성성자라는 방울을 옷고름에 매달고,
경의검(敬義劍)이라는 칼을 늘 품에 지니고 다녔는데,
성성자는 ‘스스로 경계하여 깨닫게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경의검 안쪽에는 내명자경(內明者敬), 바깥쪽에는 외단자의(外斷者義)라는
명문(名文)을 새겨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은 경(敬)이고, 밖으로 행동을 결단하는 것은
의(義)라고 해 이를 좌우명으로 삼았다. 남명은 만년에 성성자를 김우옹에게 주면서
“이것의 맑은 소리가 항상 공경하고 경계하도록 깨우침을 줄 것이니
그것에 죄를 짓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당부했다.
“이것은 옛 사람이 옥을 차던 뜻에 비길 바가 아니다.”며 거기에 남다른 특별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음을 강조했는데, 이는 자신의 제자들 가운데 김우옹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의 한 사람으로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몸이 움직일 때마다 소리가 나는 성성자를 통해
김우옹은 스승의 가르침을 세상에 펼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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