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하씨 연원.

달성하씨의 씨족사.

달성문지기 2011. 3. 23. 00:08

 

달성하씨는 고려중엽에 중국에서 귀화(歸化)한 성(姓)이다.

1985년 당시의 인구센서스에 따르면 2,800여명이다.

크게 번성하지는 않았지만, 종문(宗門)의 행적(行蹟)등을 보면,

충(忠)과 효(孝)에 명성(名聲)을 높인 인물이 많다.
이를테면, 지금까지 잘 유지되고있는 하효자정려각(夏孝子旌閭閣)이,

경북지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효자비(孝子碑)라는 사실에서도, 이를 알수 있을 것이다.
이 효자정려각(孝子旌閭閣) 은,

고려조에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하광신(夏光臣)의 효성(孝誠)을 기리기 위하여,

충숙왕(忠肅王) 14년에, 나라에서 세운 정려각(旌閭閣)이다.

그런가하면 벼슬길에 올라 종문(宗門)뿐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헌신(獻身)한 분도 많다.
하광신(夏光臣)의 13세손(孫) 하운서(夏雲瑞)는,
선조(宣祖)때 무과(武科)에 올라 훈련원(訓練院) 판관(判官)에 이르렀고,

그의 자손들은 3세(世)에 걸쳐 여덟분이나 등과(登科)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가 살던곳에는 팔과정(八科亭)이 세워졌다.  

달성하씨는 영조(英祖)이후에는, 사환(仕宦)보다는

학문(學問)과 덕행(德行)으로 입신(立身)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하운서(夏雲瑞)의 오대손(五代孫) 열암(悅菴)하시찬(夏時贊)은,

예학(禮學)에 밝아 팔례절요(八禮節要)를 저술(著述)했고, 

만년(晩年)에는 독무암서(獨茂巖棲)라는 서재(書齋)를 짓고 유학(儒學)에 정진(精進),

더욱 문명(文名)을 날렸다. 열암문집 5권은 이때에 쓴것으로,

서문은 매산 홍직필이 쓰고 발문은 이조판서 서능보가 지었다.


그르나 앞서 말했듯이,

달성하씨는 씨족(氏族)의 역사에 비(比)해 벌족(閥族)한 성씨(姓氏)라고는 할 수 없는것이,
임진왜란(壬辰倭亂)때 많은 씨족이 멸문지화(滅門之禍)라 할 만큼의 수난을 겪은데 있다.

그런중에도, 하광신(夏光臣)의 13세손 동추공(同樞公) 하인경(夏仁敬)은,

가문(家門)의 소자출(所自出)을 기록, 오늘의 종통(宗統)을 확연하게 한,

큰 공(功)을 세운 인물인데, 임진왜란 당시 이분을 제외한 대게의 하씨는,

희생(犧牲)을 당하는 참화(慘禍)를 입었다.

그러나 다만, 하우신(夏右臣)의 14세손 참의공(參議公) 운복(雲福)이,

호남(湖南)에서 임진란(壬辰亂)에 기병입공(起兵立功)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 병조참의(兵曹參議)로 추증(追贈)되었으며,

그런 연유(緣由)로 그 후손들이, 현재 호남에서 세거한다.

 

학명(學名)으로 알려졌던 인물들은, 영조(英祖)때의 하창징(夏昌徵)과,

숙종(肅宗)때의 인물 하기징(夏己徵)도, 하시찬(夏時贊)에 앞서 세상에 나온 분들이다.
그 뒤로 추모재(追慕齋) 하정익(夏正益)이 정조(正祖)때에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지낸

문학인(文學人)이였고, 순조(純祖)때 하석규(夏錫圭)는 금애집(錦涯集)을 썼으며,
졸수(拙搜) 하정화(夏正華), 경재(警齋) 하치규(夏治奎), 명언(明彦) 하우봉(夏遇峰)은,

학행(學行)과 덕망(德望)이 높아 교도후진(敎導後進)하고,

향리(鄕里)가 추증(追贈)하였으며, 철종(哲宗)때의 하준(夏濬)과 하연(夏演)도

선문학(善文學)하여 시문집(詩文集)을 남겼다.


또 오재집(悟齋集)을 지은 오재(悟齋)하동기(夏東箕)와

금은집(琴隱集)을 남긴 하동규(夏東奎), 그리고 서파집(西坡集)을 남긴

서파(西坡) 하동만(夏東萬)등은, 모두 고종(高宗)때의 인물로

달성하씨(達城夏氏)를 빛낸 인물들이다. 그리고 운정(雲亭) 하우근(夏瑀根)도,

근대(近代) 하씨(夏氏)의 선각자(先覺者)로, 종인(宗人)들이 흠모(欽慕) 하였다.

 

도리켜 보면, 한말(韓末)과 일제시대에는, 철저한 배일정신(排日精神)으로,

일제(日帝)의 호적(戶籍)에 취적(就籍)을 거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토지조사사업에도 항거(抗拒)한 결과로,

시랑공(侍郞公)의 정려각(旌閭閣)땅 수천평(數千坪)과, 그 외 많은 토지를 빼앗기어,

국유지(國有地)로 흡수되기도 하였다.
지금의 달성하씨(達城夏氏)들은, 대구 수성구 만촌동(晩村洞)에서,

조상(祖上)들의 유업(遺業)을 받들고자 힘써고는 있지만, 시대(時代)의 변천(變遷)에 따라,

많지않는 일가(一家)들도,여러 이유로 고향(故鄕)을 떠나고 있어,

하씨(夏氏)의 명맥(命脈)만 유지(維持)하고 있으니, 한편으로 답답하다.

                                                                                                      -- 문지기 하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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