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망우공원에 있는 달성하씨 유허비) *** 달성하씨(達城夏氏) 내력 ***
시조 하흠(夏欽)은,
중국 송나라의 대도독(大都督)으로,
고려 인종(1123-1146)때 귀화하여, 달성(지금의 대구)에 정착함으로써 달성하씨의 시조가 되었다.
그런데 달성을 관향(貫鄕)으로 정(定)한 것은,
그의 아들인 하용(夏溶)이, 호병(胡兵:오랑케)을 무찌른 공(功)을 세워서, 달성군(達城君)으로 봉해진데 연유한다. 따라서 하(夏)씨는 달성(達城) 단본이다.
달성(達城)은 대구(大邱)의 옛 지명이다.
대구는 본래
신라(新羅)의 달구화현(達丘火縣)인데, 경덕왕때, 대구(大丘)로 고쳐 수창군(壽昌郡)의 속현(屬縣)으로 만들었다. 고려 현종때는 경산부(京山府)에 소속시켰고,
인종(仁宗)때는 현령(縣令)을 두었으며,
조선 세종(世宗)때는 군(郡)으로 승격 되었다가 세조(世祖)때는 진(鎭)이되고,
도호부사(都護府使)를 두었으며, 1895년에 부(府)로 되었다.
******주요 세거지와 변천 ******
시조 하흠이 달성(達城)에 정착함으로써,
아들 용(溶)이 출생지의 연원(淵源)에 따라
달성군(達城君)이 되었고, 그는 부남(府南)의 입암(立巖)골(지금의 대구 봉덕동 수도산)에 터를 잡았으니, 후손들의 세거지(世居地)가 되었다.
시조의 삼대손(三代孫)인 문하찬성(文下贊成) 하일영(夏日映)께서 형제분을 두시니,
장자(長子)는 시랑공(侍郞公)인 하광신(夏光臣)으로,
그 후손은 대구지방에 세거하게 되었으며, 차자(次子)는 순주부사공(淳州府使公)인 하우신(夏右臣)으로, 그의 후손은 전라도 순창,담양,장수, 등에서 세거하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시랑공(侍郞公)의 십삼대손(十三代孫)이신
어모장군행훈련원판관공(禦侮將軍行訓練院判官公) 하운서(夏雲瑞)께서 오형제를 두시니,
장자(長子) 령우(零雨)께서는 무후(無后)하고,
차자(次子) 아오지만호공(阿吾地萬戶公) 휘(諱) 림우(霖雨)의 후손이
경남 밀양(密陽)에 세거 (阿吾地萬戶公派),
차자(次子) 훈련원봉사공(訓練院奉仕公) 휘(諱) 점우(霑雨)의 후손이
대구(大邱)에 세거(訓練院奉仕公派),
차자(次子) 평산포만호공(平山浦萬戶公) 휘(諱) 무우(霧雨) 후손이
경북 달성(達城)의 김흥(金興),논공(論工)에 세거(平山浦萬戶公派),
차자(次子) 용양위부호군공(龍양衛副護軍公) 휘(諱) 시우(時雨)의 후손이
경산(慶山) 안심(安心:半夜月)에 세거하고 있으며,(龍양衛副護軍派),양(馬+襄)
순주부사공(淳州府使公) 휘(諱) 우신(右臣)의 십이대손(十二代孫)인
휘(諱) 우기(雨起)께서 삼형제를 두시니,
장자(長子) 휘(諱) 순학(舜鶴)의 자(子) 통정대부훈련원첨정(通政大夫訓練院僉正) 휘(諱) 운발(雲發)의 자손이 순창(淳昌) 옥정(玉井)에 세거하였으나 현재는 무후(無后)하고(僉正公派),
차자(次子) 휘(諱) 온(溫)의 자(子) 증통정대부병조참의(贈通政代夫兵曹參議) 휘(諱) 운복(雲福)의 자손이, 전북 장수(長水) 구락(九洛)에 세거(參議公派)하며,
차자(次子) 휘(諱) 순붕(舜鵬)의 자(子) 통훈대부사헌부감찰(通訓大夫司憲府監察) 휘(諱) 운기(雲起)의 자손(監察公派)이 역시 전북(全北)순창(淳昌) 옥정(玉井)에 세거하고 있다.
그르므로 하흠종계(夏欽宗系)의 세거지는 달성(達城)이다.
이 사실을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 의하면,
달성부(達城府)에는 토박이 성씨(姓氏)가 다섯이 있는데, 하씨(夏氏)가 서씨(徐氏),배씨(裵氏),백씨(白氏),이씨(李氏)와 열립(列立)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980년 당시의 세거지는 경북 달성지방을 비롯하여 경산, 밀양, 원주, 순창, 장수,지방임이 알려져 있다.
- 문지기 夏潤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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