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유적과 문헌

* 임란선조(仁자敬자) 묘갈명 *

달성문지기 2011. 3. 23. 11:16

 

 

 

* 비문(碑文) *
達城之夏氏世居府東之晩村族數未繁世守儒範以古族稱於鄕
달성의 하씨는 부동의 만촌에 세거하며 족수(族數)는 번창하지 못하나
선비의 모범을 여러대로 지켜오는것으로, 옛부터 고을에 이름이 나 있었다.

其先祖中樞公之墓舊在府南江亭山坤坐配貞夫人興海扈氏附焉
그 선조 중추공의 묘소는, 이전에는 부남의 강정산에 곤좌로,

부인 정부인 흥해호씨와 합장되어 있었다.

近因地域之變倂移착于漆谷枝川面昌坪洞山祭嶝寅坐原  (착=人안에昔)
최근에 지역의 변화로 인하여,
이곳 칠곡 지천면 창평동 산제등 인좌원으로 이장 하였다.

諸後孫謂舊阡之久無顯刻久也今?旣移蓋追成闕儀乃合

力謀竪碣 且其事謁余銘余興 夏氏有聲氣之孚舜不能固然
후손들이 협의하여, 구묘에는 여태껏 비석이 없었는데, 이장(移葬)도 하였으니,
어찌 비각(碑刻)한 의물(儀物)을 갖추지 않을수 없겠는가 하여
수갈(竪碣)할 것을 수의하여 나에게 묘갈을 청(請)하였으니,

나와 하씨는  기(氣)의 통함이 있어서 결코 사양치 못하였다.
今距公之世己餘三百年 家傳又? 不能無杞宋之歎則

固難乎爲述也 惟據其可據而敍之可乎
공의 세대는 약 300여년 전이고 가전(家傳) 또한 간략하여 자세한 내력을

알수 없어서 한탄해도 짓기 어려우니 증거할수 있는것만 의거해서 쓰는 바이다.

公諱仁敬字聖原號立巖 生以宣祖卒以仁祖丙戌八月十九日

壽六十八年 十四歲遭壬辰之亂 脫身潛?於興海等地得以全
공의 휘는 인경, 자는 성원, 호는 입암인데, 선조 무인(1578)년에 나시고
인조병술(1646)년 팔월 십구일에 졸하시니 68년을 사시었다.

열네살 나이에 임진왜란을 만나, 고향을 탈출하여 흥해등지로 잠적하여,
왜란을 피해 몸을 보전할 수가 있었다.

亂已還鄕 修治先壟 安輯宗族家賴以 保有亂中日記 官至嘉善大夫中樞府使
난리후에 고향으로 돌아와서 선산을 돌보고, 안전한 일가들을 모아 집안을

일으키니, 난중일기를 남기셨고 나중에 벼슬이 가선대부 중추부사에  오르셨다.

祖曰碩贈樂正 考曰汶禮賓寺主簿贈工曹參議 兩世之贈蓋以公貴也
조부는 석(碩)이시고 증장악정을 하시고, 부(考)는 문(汶)이신데  예빈사주부이신데

공조참의시다.이 같이 양세에 걸처 증직이 된 것은 공의 귀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

一男雲瑞訓練院判官錄振武原從勳 男五長曰零雨業儒 次俱以武科 霖雨萬戶

霑雨奉仕霧雨萬戶時雨副護軍 時稱四虎 以下不錄
한 아들을 두셨으니, 이름이 운서로 훈련원 판관을 지내시고 진무원종훈에 기록 되셨다.
이 공(公)도 아들 다섯을 두시니 장자는 업유(業儒)하시고,

다음으로는 다 무과(武科)하여,임우는 만호, 점우는 봉사. 무우는 만호,

시우는 부호군이니, 이 시대 사호(四虎)로 불리웠다. 이하는 기록하지 않는다.

此爲家傳可據之槪而 餘莫之詳 盖當大亂 瘡瘍之際 以童年孤踪轉?殊鄕
得免鋒鏑 非優於氣量 不能而日記述 又可見文學志廬也
이는 가전에 의거한 대개이나, 나머지는 상세치 못하다.

천하대란의 어지러운 세상을 당하여, 나이도 어린 몸으로 낮설은 타향을 홀로

전전하며, 무서운 전쟁을 피하였음은 기량이 뛰어나지 않고는 불능하였을 것이며,

또한 일기(日記)가 있었음은 문학사려의 조예가 비범하였음이 분명 하리라!

至其桑.木+辛.之返而 先業之保 不隕家聲則 儼然有一家中興之像
卽此卽足以 見公之大而 無待乎詳
그가 고향에 돌아와서는 선업을 보전하여 가성(家聲)을 떨어뜨리지 않고,

엄연하고 의연하게 일가중흥의 기량을 가지니,

이 또한 공의 위대함을 족히 볼것인즉, 그 상세함을 알면 무엇하겠나

惟中樞公秩不知 是蔭是壽而 踐歷之業 無得以考 爲可恨然 是特其
在外者則 不足爲輕重也 
중추공의 품절은 알수가 없으나, 이 음사(蔭仕)수고(壽考)하며

천력지업(踐歷之業)을 상고(詳考)할수 없음이 한스러우나,

이 역시 밖의 사람으로써 경중을 알 수 없다.

爲之銘曰,  명하여 가로되,
  夏氏中國 欽爲鼻祖-하씨는 중국에서 나시니 흠(欽)이 시조이시다

宋大都督 始來東土-송나라 대도독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오셔서
有子曰溶 伐胡有功-아들있어 용(溶)이라네 오랑케쳐서 공세우고

食邑于達 子姓收宗-달성으로 식읍받아 자손들을 거두셨네
自後冠冕 數世繹如-이로부터 벼슬이 수세를 빛을내니
侍郞光臣 煌煌孝閣-이부시랑 광신의 효자정려 휘황하다
歷麗及鮮 綿綿而連-고려에서 조선으로 면면히 이어지니
遙遙厥緖 公實得傳-멀고 먼 그 유서를 공이 전하였네
龍蛇劫火 千林肅索-임진왜란 물러나니 천림은 쓸슬하여
凜凜弱植 超脫焚.착-늠름하다 새로 심은나무 묵은 것 불싸르고(착=?안에昔)
桑.木+辛.楸栢 保得武揚-고향에 추백심어 편안하게 살으시고
紹前其後 遺緖益張-그 업적 계승하여 유업 더욱 빛내리라
位至崇秩 榮及遷墓-벼슬은 더욱 높아져 영광이 무덤에 비치고
雖泯其蹟 尙高遺謨-비록 그자취는 잊을지라도 오히려 유훈은 높아지리라
人+昔.域之遷 舊宅維新-묘역의 옮김은 옛집을 더 새롭게 하네!


                    庚戌暮春 花山 權龍鉉 撰(경술 모춘 화산 권용현 찬하다)
-------------------------------------------------역.정리, 문지기 하성대.--
*참조)

*권용현(1899-1987): 호는 추연(秋淵), 자는 문현(文見). 관은 안동(安東-花山)
태동서사(泰東書舍)를 지으시고 일평생을 학문연구와 후진교육으로 보내셨으며,
상례쇄록(喪禮鎖錄)을 위시한, 수많은 글을 남기신 이 시대의 영남 거유(巨儒)로써,
우리문(門)의 오재문집서(序)와 금은문집서(序), 또 위에 기록된 우리 ‘중추부사공의 묘갈’"유모재명'
,등 撰해 주셨으며, 우리로서는 자랑스러운 특별한 인연을 가진 당대의 대학자(大學者)시다.